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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베쓰 헨리 - 마음의 범죄 / Beth Henley - Crimes of the Heart

by 나의달님 2021.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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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this vision just sort of came into my mind.
It was something about three of us smiling and laughing together.
    
페미니스트 극작가 베쓰 헨리(Beth Henley)의 작품『마음의 범죄』(Crimes of the Heart)의 공간적 배경은 부엌에 한정된다. 부엌이라는 공간이 주를 이루는 만큼 갖가지 음식은 시종(始終) 연이어 등장하는 소재이며, 일견 여성들의 부엌에는 음식이 항상 풍족하게 자리하는 듯 보인다. 예컨대 1막 서두에서 급조한 쿠키 케이크로 홀로 서른 번째 생일을 자축하는 레니(Lenny)의 모습이 등장한다면, 3막 말미에서는 큼지막하고 보기 좋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세 자매가 생일축하잔치를 벌이는 장면으로 작품이 끝난다. 여성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음식은 더 풍성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음식들을 주로 소비하는 주체가 여성이라는 것과 더 나아가 남성들은 여성들이 마련한 음식을 섭취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반면 할아버지(Old Granddaddy)와 재커리(Jackery)와 같은 남성들은 병원에서 회복을 기하고 있는 극적인 대비는 여성들이 차차 그들의 삶을 재단하는 남성적 권력에서 벗어나며 자주성을 획득해나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Q.『마음의 범죄』에서 여성의 삶에서 음식이 수행하는 역할은?
Q. 작중에서 부엌과 관련된 여성의 역할은 기존에 그들에게 기대되었던 역할에 비했을 때, 어떻게 상이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우선적으로 음식은 세 자매가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더 나아가 음식은 그들이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가 하면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선호도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예컨대 막내 베이브(Babe)가 명망있는 변호사 남편 재커리에게 총을 쏨으로써 구속되는가 하면, 레니가 아끼던 말 빌리 보이(Billy Boy)가 번개에 맞아 죽는 등 여러 가지 큼지막한 사건들이 부엌의 공간으로 틈입해 들어오는 와중에도 레니는 운 좋게 얻은 피칸을 보고 파이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는가 하면(1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커피를 마시는(15) 등 평소의 식습관을 그대로 유지한다. 뿐만 아니라 메그(Meg)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레니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콜라를 권하는 모습을 보이고(Just calm down. Would you like a Coke? 16), 베이브는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동시에 레모네이드를 자신의 취향에 꼭 맞게 만들어 먹는다(33). 테이블을 중심에 두고 둘러앉아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분명 음식과 분리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이 자명하다(음식은 입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고 말(speech)도 결국 입을 통해 하는 것이 아니던가). 동일한 음식을 함께 섭취함과 동시에 이들은 그들의 삶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해 의논한다. 요컨대 매일 음식을 소비함으로써 평정을 유지하는 이들에게 음식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느끼는 허기를 달래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 얘기 나누길 소망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매개로서 기능하고 있다(Because it’s a human need. To talk about our lives 46). 어머니의 장례식 때 세 자매가 배가 터지도록 먹었던 바나나 스플릿만 해도 (비록 복통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이들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쓰라린 아픔을 다소나마 덜 고통스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73). 한편 여성들은 음식을 통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는데, 이러한 표현의 대상을 음식에 국한시켜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예는 바로 베이브의 레모네이드다. 베이브는 단순히 재커리의 외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총으로 쏘았다고 고백하는데(27), 그녀가 범행을 저지른 직후 하는 일은 부엌에 들어가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먹음으로써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때 그녀는 자신이 꼭 원하는 방식으로 음료를 제조해 만족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굳이 밝히는데, 이렇게 사소하게 여겨질 수 있는 요소들에 관해 자신의 선호도 표현을 분명히 하는 모습은 재커리와의 결혼생활에 그녀가 느끼는 불만감을 토로하는 것과 분명히 맞닿아있다(I made it just the way I like it, with lots of sugar and lots of lemon 56). 이는 그녀가 바네트(Barnette)에게 “보트렐 부인”(Mrs. Botrelle)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요청하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록 이 여성들은 조부모의 손에서 양육되며 피치 못하게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삶만을 살아왔지만, 음식이라는 소재에서 시작해 다른 인물―예컨대 윌리 제이(Willie Jay)와 칙(Chick)에게 상반되는 대우를 함― 등에까지 이들이 호불호(好不好)를 분명히 가리고 또 표현하는 모습은 남성의 존재 없이도 이들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원하는 바를 알고 있으며 그 판단 기준이 사실은 굉장히 뚜렷함을 상기시켜준다. 물론 메그가 허락 없이 레니의 생일 캔디를 망쳐놓게 되고 이로 인해 자매간의 갈등이 촉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음식을 통해 여성들이 함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해나가며 관계의 진전을 이루는 양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은 부엌에서 나는 음식을 남성과 나누지 않는다. ** 원래대로라면 여성들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남성에게 결과물을 내보여야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마음의 범죄』의 남성들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우선, 할아버지의 경우 관을 통해 겨우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정도로 위독한 상태에 있다(How they have to feed him through those tubes now 20). 의미심장하게도, 베이브는 재커리의 심장을 향해 총을 겨눴지만 실제 총알은 ‘복부’, '위'를 향해 발사되었다(aiming for his heart but getting him in the stomach 50). 이렇듯 남성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에 처함, 혹은 (여성이) 그들이 그러한 상태에 처하게 함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음식을 맘껏 섭취하는 여성들의 모습과는 분명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여성의 가사노동―그것은 대표적인 부불(unpaid) 노동인데―의 최대 수혜자인 남성이 그림에서 제외된 모습은 작중의 여성들이 점차 남성의 구속력으로부터 해방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어머니는 지독한 외로움 끝에 비극적 죽음을 맞았지만(’cause she felt so all alone 119), 베이브의 두 번째 자살기도에서 그녀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메그가 베이브를 삶의 영역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 풍족한 음식만큼이나 여성들의 삶은 풍만한 가능성으로 넘쳐나는 것, 살아가는 법 배우기(we’ve just got to learn how to get through these real bad days here 120). 할아버지가 지적했던 결함 있는 난소(shrunken ovary)의 어두운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레니가 찰리(Charlie)와의 재회를 모색하듯, 메그는 앞으로 할아버지가 아닌 자신을 위해 노래할 수 있을진대(99), 남성에 의해 정해진 한계는 결국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수정되고 거둬들여질 수도 있는 것임을 여성들은 인식해나가고 있다. 최고의 남편감 재커리를 다치게 한 베이브는 더 이상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는 모습의 고분고분한 “춤추는 캔디”(Dancing sugar plum 21)가 아니다.  ***

** 여성이 남성에게 음식을 접대하는 모습도 굉장히 드물게 나타난다(포터와 메그가 함께 술을 마시는 모습은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1막에서 포터(Porter)에게 레니가 커피를 제안하지만, 그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사양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니는 자신만을 위해 커피를 타 마신다(Oh; well, I’ll heat some up for myself. I’m kinda thirsty for a cup of hot coffee 10). 2막의 서두에서 베이브와 바네트 간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데, 단순히 커피가 오트밀로 바뀌었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55). 심지어 포터는 (대접받기는커녕) 1막에서 부엌에 음식(피칸)을 들여오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가 조금 나이브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작중에는 '좋은' 남성들만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 “Well, if you told him, you can just untell him”(102)과 같은 맥락. 남성에 의해 꼬여버린 매듭을 여성들은 혼자 힘으로 다시 풀 수 있다.

예전에 희곡 시간에 배웠던 작품이다. 그저 음식만에 착안해 여성과 연관지어 쓴 글이라 큰 깊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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