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질문 + 내가 받았던 코멘트
읽을수록 재미있는 작품이라 기말 페이퍼 소재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특히 1번으로부터 흥미로운 글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1. 작품에서는 붉은색과 흰색의 색채대비가 굉장히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아도니스(Adonis)는 “비둘기 보다 더 희고, 장미보다 더 붉은”(more white and red than doves or roses are) 소년으로, 비너스(Venus)는 창피하여 얼굴이 붉어지기도, 화가 나 얼굴이 파리해지기도 하는 소년의 모습을 더없이 아낀다(225). 그런데 후반부에서 이러한 색채대비가 절정에 달할 때, 그것은 아도니스의 죽음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멧돼지의 입(mouth)은 우유와 피가 뒤섞여있는 것처럼 보이며(233), 이 짐승이 소년에게 입힌 치명상을 보면, 흰 피부가 상처에서 흘러나온 자줏빛 피로 흠뻑 적셔져 있다(234). 이것은 더 나아가 꽃의 생김새와도 관련이 있다. 즉 (비록 여신이 꽃을 아도니스의 아들과 같이 여기고자 하지만) 아도니스의 죽음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생식은 억제(혹은 좌절)된 것이다. 비너스가 사랑과 미(美)의 여신이자, ‘생산’을 관장하는 신이고, 따라서 그녀가 아도니스에게 구애하는 과정에서도 한 명의 ‘생식된 자’로서 ‘생식의 의무를 다할 것’이 강조된 바 있다(226). 하지만 작품의 말미에서 아도니스는 결국 젊은 나머지 여물지 않은 삶(unripe years 229)을 살았고, 성(性)에 대해 제대로 알기도 전에 죽음을 맞는다. 붉은색과 흰색은 어디에서 왔는가 살펴보니, 그곳에는 비너스의 탄생이 있다.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졌고, 여기서 나온 ‘붉은 피’가 가이아(대지)에 뿌려진다. 그리고 성기를 바다에 던졌을 때 ‘하얀 거품’이 생성된다. 아름다운 비너스는 이 흰 거품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던가.
즉 붉은색과 흰색은 비너스의 탄생의 열쇠였지만, 그것은 이후 아도니스에 이르러서는 욕구의 부재, 조숙한 성(性), 성적인 대상으로의 객체화, 불모성(barrenness)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색채대비를 어떻게 이해하는 편이 좋을까? 생성에 대한 욕구는 이 두 인물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가? 비너스는 우라노스의 ‘거세된’ 생식기에도 ‘불구하고’ 탄생되었지만(왕성한 번식성), 종국에 가서 아도니스에게 흰색과 붉은색은 때가 이른(부정적, 그가 경멸적으로 대하는) 성(性)경험, 죽음(혹은 생식의 좌절)을 의미한다.
2. 비너스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길 마다하지 않으며, 그녀가 자신을 한없이 낮춰가면서 아도니스를 치켜세워주는 모습은 그 진정성이 돋보인다기보다는 허풍과 위선, 과장으로 얼룩져있는 것으로 보임이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흥미로운 점은, 비너스가 육욕적(sensual) 사랑을 대변, 아직 나이가 어린 아도니스가 이성적인(reasonable) 사랑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보통 경험이 없는 자가 전자에 더 가깝지 않은가?. . .). 소년을 제 곁에 둔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신은 더 이상 소년을 붙잡고 있을 언변이 부족하여 당혹감을 느낀다(Now which way shall she turn? What shall she say? Her words are done 227). 이에 반해, 아도니스는 어느 정도 여신에게 복종을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갈수록 힘이 실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신을 책망하며, 지금껏 그녀가 주장한 내용 중 그가 반박하지 못할 것은 없으며(What have you urged that I cannot reprove 232),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육욕에 불과함을 밝힌다(Love is all truth, lust full of forged lies 232). 여신의 말문이 막혔던 것과는 달리, 아도니스는 더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말하기를 삼가기로 한다(More I could tell, but more I dare not say 232). 이런 지점에서, 시인은 여신을 우습게 만든다. 그렇다면, 시인은 비너스가 아도니스를 흠모하고 찬양하는 방식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위선적인 극찬, 허울만 좋은 것에 대한 경멸, 비판의식이 깃들어있지는 않는가.
comment:
비너스가 육체적 사랑, 아도니스가 이성적 사랑을 보여주고 있음은 사실이나, 셰익스피어는 작중에서 비너스를 (그녀가 가진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멋있게 묘사를 하고 있다. 그녀의 구애 방식에 심각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특히 결말에 주목하라.
개인적으로 비너스가 그리 멋있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천천히 읽으면서 어찌하여 그런지 느껴보아야겠다.
(비너스의 대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아도니스는 상징, 조연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짐이 사실)
3. 아도니스의 말이 암컷을 쫓아 주인에게서 멀어져가는 대목에서 말들은 자연스러운 번식의 욕구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수컷이 암컷을 좇는 것, 욕구의 상응)이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모습(여성이 남성에게 구애, 욕구의 불균형)과는 극히 대조적임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바다. 그런데 여기서 일단 짐승과 인간의 차이를 제쳐두고, 아도니스의 대사를 다시 읽으면 느낌이 새롭다. “내 하루의 기쁨은 가버렸어요; 내 말은 가버렸고, 내가 그를 잃은 것은 순전히 당신의 탓이에요. [. . .] 내 마음, 생각, 분주한 신경은 오로지 어떻게 내 말을 암말로부터 찾아올 수 있는지에 관한 거니까요”(My day’s delight is past; my horse is gone, and ‘tis your fault I am bereft him so. [. . .] For all my mind, my thought, my busy care is how to get my palfrey from the mare 228). 여기서 말의 탈을 벗기고 성(sex)에만 집중해서 아도니스의 말을 감상하면, 아도니스는 지극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을 앞에 두고도, 다른 여성에게서 자신의 남성을 되찾아오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으로 들린다. 아도니스는 자신의 말(남성)을 쫓고, 남성의 상징으로 보일 수 있는 폭력적인 멧돼지 또한 쫓는다. 이런 부분에서 혹 작품의 동성애적(아니면 소년애) 요소를 찾아보는 것은 무리일까(즉 남성이 남성에게 더 이끌리는 그런 경향)? 아울러, 어디에도 싸여있지 않고 항상 드러나 있으며, 줄곧 예리한 상아(tushes, never sheathed, he whetteth still 230)(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남근을 상징할 수 있다고 봄)같은 요소의 등장. 아도니스가 죽은 후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헤아려보려는 비너스가 멧돼지가 사실은 아도니스에게 홀딱 반하여 키스를 하려고 다가갔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실수로 그의 엄니를 소년의 부드러운 사타구니에 (칼을 칼집에 넣듯) 찔러 넣어버렸다고 묘사하는 대목도 함께 주목할 만하다(the loving swine sheathed unaware the tusk in his soft groin 235).
comment:
그러나 결국 엄니를 소년의 사타구니에 찔러 넣는 것은 '사랑에 빠진' 여성적인 존재로서의 멧돼지가 아닌가?
>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너스의 상상 속에서 그러하다.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여성적인 존재로 보인다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음. 무엇보다, 멧돼지 전에 욕정에 불타는 수컷 말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려는 자가 종종 사랑에 빠진 존재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것은 굉장히 흔한 소재임에 주목하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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