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 너무 유명한 작품이지요. 그냥 간략히 아이디어들만 적어보았어요. 감상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1. 포크너의 단편「에밀리에게 장미를」에서 1인칭 복수형으로 표현된 “We”에 속하는 다수의 마을 여성주민들과 에밀리(Emily)의 친척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 에밀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녀는 남부 몰락 귀족가문의 여식으로서 남북전쟁 이후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북부에서 남부로 유입되는 변화의 세찬 바람을 정면에서 견뎌내는 인물인데, 나중에 ‘살인자’로 판명 나게 된다.
2.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수록, 여성들이 부정적으로 묘사될수록 오히려 작품의 가부장제의 폭력성, 억압성 혹은 모순에 대한 폭로의 기능은 더욱이 활발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 믿음에 초점을 맞춰 분석을 시도해본다. 결국 에밀리라는 한 여성의 삶 자체가 강렬하고 애절한 독자에의 호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읽으며 에밀리가 어떤 방식으로 가부장적 사회질서의 압력을 극복해나가면서도 ‘소외’보다는 ‘자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살펴보자. 또한 한 여성이 내면에 축적해온 분노가 작품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있으며, 그것이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낯설게 만들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3. 그리어슨 씨(Mr. Grierson)의 죽음과 함께 남부 지주귀족가문에 갖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환상은 붕괴되며, 이와 동시에 에밀리는 본격적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해지는가 하면 세인의 동정과 가십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그녀를 강하게 옥죄고 있던 관습, 전통,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굳어진 여성성 또한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연약함, 부드러움, 헌신, 순결, 희생과 같은 여성적 가치들로 규정되길 꺼리는 에밀리는 손님이 와도 정중히 환대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집안을 말쑥하게 정돈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비록 잔존해있는 귀족중심사회의 영향이 크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눈치를 보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우습기까지 하다. (대표적으로 라임, 세금, 비소 구매 장면 떠올려보자) 대가 끊긴 몰락귀족가문에 속하면서도 도도하고 당당하게 머리를 높이 쳐들고 북부 노동자와 공개적으로 연애를 할 수 있는 당찬 모습은 그녀를 구설수에 오르기 좋은 대상으로 만들고, 또 그녀는 누구와도 진실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그녀가 멋대로 행동한 결과는 사람들로부터의 소외였고 그렇기에 이 작품 또한 결국 가부장제의 목소리를 영속화하는데 기여한다고 보는가?
4.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사회와 공동체가 개인에 가하는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압력의 힘이 작품에서 잘 드러나며, 동시에 ‘보여지기만 하는 존재’로서 에밀리가 느끼는 고립감과 소외감을 불행한 것으로만 본 것이다. 즉 불순응은 버려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 경제적 능력도 없으며 배우자 또한 없다. 하지만, ‘고립되기’가 응징이 아닌 하나의 ‘선택’일 수는 없을까?
5. 모든 것이 에밀리의 '선택'이라면, 그녀의 자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마을 사람들이 주는 소외감과 질시를 의연히 극복해낼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여성들은 토비(Tobe)가 시장바구니를 들고 “White Mansion”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며 남자가 부엌을 어떻게 잘 관리할 수는 있겠냐는 듯 비아냥댄다. 때문에 그들은 처음 에밀리의 집 주변에 악취가 생겼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고 작품은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에밀리를 제외한 여성들은 사회에서 규정한 성 역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에밀리를 이해할 수 없고, 역으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에밀리가 그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없음은 당연한 순리이다.
6.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에밀리라는 개인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아는 척 참견하고, 함부로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던 제퍼슨(Jefferson) 사람들 또한 결국엔 그녀의 실체에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이다. “We”라는 복수의 화자는 계속해서 에밀리의 삶을 추적하려들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들이 발견하게 되는 신방과 호머(Homer)의 시체는 그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믿는 것은 오만과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오히려 에밀리가 그들을 기만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까지 한다. 비록 에밀리 또한 사람들의 애정, 이해 혹은 관심을 갈구했던 여성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강조코자 하는 것은, 결국 일 대 다수의 대립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보여진다고만 해서, 절대적으로 일의 소외를 단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7. 또한 변화를 거부하는 에밀리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변화를 더욱더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역설하고 싶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점이 무엇인지, 북부로부터 유입되는 격변과 새로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호머와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된다.
8. 더불어 에밀리의 살인 행위와 시체에 대한 애착 또한 수단을 불문하고 남편을 갖고자 하는 한 여인의 절박함을 나타낸다기보다 가부장제라는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고 상황을 전복시키려는 에밀리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북부에서 온 일용직 노동자 호머 베론의 모습이 에밀리의 아버지 그리어슨 씨와 지극히 닮아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리어슨 부녀’라고 하면 딸에게 등을 돌린 채 채찍을 손에 쥐고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호머 또한 에밀리와 함께 있을 때 시가를 입에 물고 말고삐와 채찍을 노란 장갑에 쥔 모습으로 묘사된다.
- 호머가 에밀리에게 완전히 정착하려는 의지를 표명하기 보다는, 그저 가볍게 만난다고 떠들어댔듯, 그 또한 에밀리에게 결국은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더욱이 에밀리의 아버지가 딸의 전반적인 생활을 모두 통제하려들듯, 호머의 직업 또한 건설현장의 “감독”(foreman)이라는 점에서 둘의 상황통제능력, 혹은 그렇게 하려는 욕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어슨 씨가 몰락귀족의 초라한 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도록 부단히 애를 썼던 것처럼 (에밀리의 활동 영역을 집 안으로 제한) 호머 또한 아이들 앞에서 흑인들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어딜 가든 중심에서 제 존재감과 위력을 과시하는 등 ‘허영’에 빠진 인물이기도 하다.
9. 에밀리는 비록 젊은 시절 아버지로 인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지만, 아버지의 ‘대리자’격으로 보이는 호머가 나타났을 땐 순응적인 태도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에밀리는 자신이 ‘선택’한 호머라는 남자와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즐기며 제 스스로 신혼집에 필요할법한 물건들을 구비해놓고 남성을 집 안에 들일 날을 기다린다. 그녀가 꾸민 신방은 그녀가 그 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고도 제가 택한 남성을 데려다놓고 혼인을 치루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살해함으로써 그가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꼭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 남성의 활동 범위를 여성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하나의 가정 내부로 제한시킨다. 아버지와 호머가 상황을 통제하려들었듯, 이제는 저 자신이 나서 철저한 계획 하에 상황을 통제하기 용이하게 만든 것이다. 작품에서 남녀의 역할 변화는 이렇게 보여진다. 극단적이고 낯설지만 있음직하게. (성 역할이 관계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주목, 에밀리-아버지, 에밀리-토비, 에밀리-호머)
10. 여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듯한 제목에도 불구, 독자들이 에밀리의 광기어린 모습에 반감을 드러내거나, 작품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완벽히 체화하지 못한 여인이 맞는 고독하고 불후한 최후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다소 일면적이진 않는가?
11. 결론적으로 나는 첫째, 작품을 에밀리의 ‘소외’적 측면보다는 ‘자유로움’에 중점을 두어 감상하였다. 둘째, 젊은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억압은 결국 아버지와 동질적 이미지를 가진 남성 호머을 살해하도록 이끌었고, 이것은 어떤 불합리한 상황을 뒤늦게나마 변화시키고자 했던 하나의 시도로 보았다. 호머를 살인하는 행위는 불합리하다. 비이성적인 행위다. 그러나 에밀리를 오랜 세월 구속해왔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또한 그녀에게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호머의 시체와 함께 자는 것: 자신이 원할 때만 성적 관계를 갖고 (상징적), 자신이 원할 때만 그를 볼 수 있음. 물론, 이것이 극단적인 나머지 에밀리의 행동의 오류(윤리적인 결함)를 지적하는 부분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음)
12. 제목에서의 장미를 빨간 장미로 본다면 그 붉은 빛은 왕성한 성적 에너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는 없을까?
13. 작품의 제목(마치 에밀리에 대한 공감을 자아내는 듯) 집중한다면, 에밀리를 단순히 '미친 여인'으로만 해석하긴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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