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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 James Joyce - Eveline (from Dubliners)

by 나의달님 202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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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

독서한 뒤 간단하게 작성해보았습니다. Eveline에 집중했습니다. 


1-1. 단상

자신이 처한 환경에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유보하기를 반복마침내 환경에 종속되어 고정된 삶을 사는 운명의 사람들이 있다종국에 그들에게는 수동성”(passivity)만이 남아있는데조이스의더블린 사람들(Dubliners)에서 에블린(Eveline)이라는 처녀의 운명이 바로 그렇다그녀의 삶은 너무도 고단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모든 책임을 에블린에게 떠넘긴다. 이에 그녀는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가 하면아버지의 지속되는 폭행에 위협을 느끼고,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고스란히 아버지의 손에 쥐어준다집 안에서 뿐만 아니라직장에서도 그녀는 사람들이 경멸조로 대하는 하찮은 존재다. 그녀의 아버지는 심지어 그녀가 프랭크(Frank)와 만나는 것을 금지시키기도 한다(69). 희생으로 점철되는 삶이 계속되다보니 작품 초반에서부터 그녀는 이미 미지의 땅,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67) 그런 세계로 나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다짐을 꾸렸고남겨지는 식솔들에게 편지도 써두었다어머니의 결국에는 광기로 끝을 맺는 흔해빠진 희생의 삶”(that life of commonplace sacrifices closing in final craziness 70)을 그대로 물려받지 않기 위해 그녀는 선창가로 꾸물거리듯 이동한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 선창가는 모험과 변화의 공간을 상징한다이곳에 그녀의 구원자 프랭크가 기다리고 있다그는 젊어서부터 배를 타기 시작하여 여러 곳을 경험한 바 있으며에블린에게 모험담을 신나게 들려줄 수 있는 존재다그는 그녀에게 사랑받는 기분을 알려준 존재이자, 고맙게도 나서서 타지에 그녀와 함께할 살림집까지 차려놓은 상태다. 마침내 에블린의 온전한 행복추구권”(70)은 프랭크로 인해 실현될 참이다그런데 막상 떠나려고 보니 그녀의 내면에 죄의식이 밀려든다비참한 과거이나마 새삼 미련이 남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한다넘쳐나는 죄의식은 그녀의 시선에 검은 막을 씌우기에 이른다이내 배는 시꺼먼 덩어리”(black mass 71)로 보이고배가 내뿜는 기적소리는 애절하게”(71)만 들린다마찬가지로 그녀를 보호해주고 구원해 줄 기사였던 프랭크는 그녀를 익사시게 될”(71) 사람으로 돌변한다온몸이 경직되고 사고마저 마비되어 버리는 순간에블린은 극도로 처절하면서도 무기력하다변화의 당위성을 몇 번이고 마음에 되새기고무겁게 발걸음을 떼었건만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실체는 수동적이며 힘없는 동물”(a helpless animal 71)과 다름없었다. 결국 그녀는 털어내고 털어내도 다시 쌓여버리는 케케묵은 먼지에도 종속되어 있는 존재였던 것. 이렇듯 조이스는더블린 사람들에서 반복해서 에블린을 비롯한 인물들의 정신적 허약보잘 것 없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가능성 앞에서 정신적 허약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상은 누구에게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새로운 가능성어떤 변화를 전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보기 또한 어렵다계속해서 작중 인물들의 모험과 도전이 좌절되는 모습의 반복은 동시에 에블린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이 이채로운 경험, 이국적인 장소에 대한 막연한 환상 또한 꼭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우쳐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1-2. 프랭크에 대한 의견 (문예출판사의『조이스 문학의 길잡이』를 보고 재미있어서 내용을 간추려 보았어요)

에블린의 시선으로 볼 때 프랭크는 분명 사내답고 친절하며 믿음직스러운 인물로서, 험난한 생을 살아가는 에블린에게 감정의 도피처가 되어준다. 그러나 그를 에블린이라는 여성을 구제해주는 구원자, 기사로만 보는 사고 자체는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일단 그는 에블린에게 비참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이 함께 꾸릴 무대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그의 직업이 뱃사람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직업의 특성상 그는 계속해서 이동하는 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가 어느 순간 에블린에게 등을 돌리고 사라져버릴지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에블린에게 베푸는 모든 친절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가씨는 경험 많은 그에게 그저 감언이설로 꼬드기기 쉬운 한 여성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따져보면, 그가 에블린에게 해주는 모험담 또한 그 진위를 파악하기 힘들며 (이 점에 대해서 조이스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행선지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당시 사창가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프랭크와 에블린의 관계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에블린이 그를 향해 가지는 감정 또한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에블린에게 너무도 달콤한 제안을 하는 것은 그녀의 상황을 악용한 사례는 아닐까 의심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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