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두 번째 글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글 먼저 읽고 읽어주세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 William Shakespeare - Macbeth 01 (tistory.com)
그러나 불행하게도 맥베스의 원대한 열망에 비해 그의 상황 통제력이란 참으로 하잘것없다. 물론 그가 발아래에 두고 부릴 수 있는 수많은 신하들이 생겼음은 사실이다. 던컨의 생전과는 대조적으로 왕이 된 그는 이제 악한 일을 행함에 있어 굳이 자신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그가 신하를 부리는 방식을 보면 영 어설프기 짝이 없다. 특히 맥베스가 뱅쿠오(Banquo)와 그의 아들 플리언스(Fleance)의 살해를 사주할 때의 모습은 눈여겨볼 만하다. 맥베스는 암살자들에게 왜 뱅쿠오가 악인인지에 대해 여러 번의 만남에 걸쳐 구구절절 설명하며, 이후 아내인 레이디 맥베스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내다움(manness) 논리를 들먹이기까지 한다. 맥베스가 아내의 입을 빌려 논리를 전개하고 근거 없는 음모론까지 동원해가며 암살자들을 회유하는 모습은 그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내세울 명분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사내다움 논리가 맥베스 본인에게 기가 막히게 먹혀들었듯 암살자들은 자신들이 “남성다움의 최하위 등급”(i’the worst rank of manhood)(3.1.102)에 속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명을 받든다. 맥베스의 어설픈 통제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로서 맥더프(Macduff)라는 인물은 중요하다. 그는 맥베스가 왕위에 오른 후 처음으로 열게 된 연회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공개적으로 새로운 왕권에 반감을 표명한다. 그런데 이후 맥더프가 영국으로 도주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맥베스는 맥더프의 성을 습격해 애꿎은 그의 부인과 자식들을 도륙하라는 명을 내린다. 상대적으로 통치 비용이 적은, 통제하기 쉬운 약자들을 탄압함으로써 자신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통제력이나마 증명하고자 하려는 폭군의 위치까지 맥베스의 위상이 추락해버린 것이다.
던컨에게 주어진 영토와 맥베스에게 주어진 영토의 질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신하들에게 충성심을 심는 것을 ‘파종’(播種)에 비유해보자면, 던컨이 자신의 경작지에 무엇을 심었든 그것들은 그의 품 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무성히 잘 자란다. 던컨의 역할은 그저 뿌린 것의 결실을 즐거운 마음으로 거두어들이는 것뿐이다. 이에 반해 맥베스가 뿌린 씨앗은 사회 불안 속에서 봉기하거나 그의 영향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성격을 갖는다. 마지막까지 맥베스의 곁에 남아있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에게 충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내린 명령에 따르는 자들은 그것이 그저 명령이기 때문에 복종한다. 그런 행위에 사랑이라곤 없다”(Those he commands move only in command, / Nothing in love)(5.3.19-20)는 사실로부터 맥베스가 겨우 껍데기만 남은 왕이 되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맥베스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은 절묘하게도 그가 잠을 죽인 후부터다. 그리고 잠을 제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는 맥베스가 삶과 죽음에 대한 통제력 또한 상실했음은 물론이다. 잠은 삶과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맥베스가 그 자신이 잠을 죽였다는 정체 모를 울림을 들은 직후 셰익스피어는 잠의 긍정적인 특성들을 열거한다. 예컨대 그는 작품에서 “청정한 잠, 엉클어진 근심의 실타래를 정리해주는 잠. . . 괴로운 노동 뒤 목욕, 상처받은 마음을 위한 진정제, 위대한 자연의 두 번째 행로, 인생의 향연의 주된 양육자”로서의 잠을 소개하고 있다(the innocent sleep, / Sleep that knits up the ravelled sleave of care . . . sore labour’s bath, / Balm of hurt minds, great nature’s second course, / Chief nourisher in life’s feast)(2.2.36-40). 아마 그는 잠을 그 자체로서 위안이자 생명력(life force)으로 봤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잠을 잃은 맥베스는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이 매일 밤 큰 근심 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것은 오늘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삶’을 맞이할 수 있을 거란 확신 및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맥베스에게는 솟아오르는 희망은커녕 내일에 대한 기대도 없다. 맥베스가 보기에 “인간의 삶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모든 것이 다 하찮을 뿐이다”(There’s nothing serious in morality:/ All is but toys:)(2.3.90-91).
그렇다면 죽음으로서 나타나는 잠의 양상은 어떨까? 맥더프는 던컨 왕의 죽음을 가장 먼저 목도한 사람으로서 왕의 서거를 만인에게 알리기 위해 그는 “일어나십시오! 죽음의 위조물에 불과한 포근한 잠을 털어내고, 여기 진정한 죽음을 보시란 말입니다!”(awake! / Shake off this downy sleep, death’s counterfeit, / And look on death itself)(2.3.71-73)라고 다급히 외친다. 여기서 맥더프가 잠을 죽음의 모조품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잠은 인간이 매일 밤마다 경험하는 일시적인 혹은 잠정적인 죽음과 같다. 낮이라는 의식의 시간에 구축된 사회적 자아는 다른 이들로부터 고립돼 경험하는 잠의 시간에서는 소멸되어 버린다. 잠을 자면서 인간은 혼란스러운 현세를 잠정적으로나마 차단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맥베스는 던컨을 살해한 뒤 일시적인 죽음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다루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니 하물며 진짜 죽음을 그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는 작품의 말미에서 지친 목소리로 “난 이제 태양을 보기에도 지친다. 그저 이 세상이 파국을 맞이했으면 좋겠구나”(I ’gin to be a-weary of the sun, / And wish the estate o’ the world were now undone)(5.5.49-50)라고 고백한다. 이 대목에서 태양은 내일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태양이 전통적으로 왕의 상징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는 그가 부정(不正)한 방법으로 차지한 왕위의 무상함을 깨달았다는 말도 된다.
이토록 인생의 덧없음을 누구보다 강하게 통감하는 맥베스지만 이제 와서 그는 감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자신이 손에 쥔 것을 모두 내려놓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잠을 죽인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의 영역에서 이탈한 그는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려 들지만 그곳에서 그가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궁극적으로 그는 마녀들(witches)의 예언에 종속되어있다. 코더(Cawdor)의 영주가 된 후 왕의 시해를 감행함으로써 그다음 예언의 결과를 제 스스로 재촉한 까닭에 그는 더더욱 그들의 예언에 얽매이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밝힘으로써 이 극을 잔인한 운명의 질곡에 빠지는, 즉 불가역적인 운명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한 영웅의 비극적 서사로 보자는 의도가 아님은 분명히 밝히는 바다. 맥베스가 추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본격적인 사건, 즉 던컨 왕의 시해는 마녀가 예언한 그의 운명이 아니라 전적으로 맥베스 본인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던컨을 살해하는 일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논리적으로 따져보아 그것이 자연에 반(反)하는 일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마녀들이 그가 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왕이 되는 길목에 무엇이 들어설지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맥베스의 몫인 것이다. 한편 자연에 반하는 살생을 저지르고 자연스러운 잠을 없애는 대신에 초자연적인 마녀들의 존재에 의지하는 모습은 맥베스가 모든 인간이 향유하는 자연스러움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음을 시사한다.
본 논문에서 사용한 텍스트는 헌터(G. K. Hunter)가 편집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4대 비극』(William Shakespeare: Four Tragedies) London: Penguin, 1994의 해당 작품에 의하며, 우리말 번역은 필자의 것이다.
다음 포스팅, 즉 마지막 포스팅에서는 마녀의 예언을 주로 다루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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