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pixabay
짧은 감상문입니다. 남의 창작물을 함부로 긁어가지 말아주세요.
존 씽(John M. Synge)의 단막극『말을 타고 바다로 가는 이들』(Riders to the Sea)은 필연적으로 바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소중한 이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애란(Aran) 섬 주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시아버지를 비롯해 남편, 다섯 아들을 이미 바다에게 넘겨줘야했던 모리아(Mauria)의 애달픈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는 와중에 그녀가 가진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바틀리(Bartlely)의 존재는 단연 중요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바틀리 또한 끝내 익사하게 되는 불운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그의 죽음은 모리아가 일종의 체념 상태에 다다르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녀가 삶의 보편적 진리(396)를 깨닫고 수용하게 하는 매개로서 작용한다. 비평의 중심점은 모리아에게로 기울기 쉬우나 본 글은 바틀리가 생전 겪어야 했던 갈등을 두 가지 층위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그중에서도 바다, 즉 자연과 생존(생계)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어머니와 겪는 갈등이 논의의 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첫 번째로 바다가 두려우면서도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바틀리는 운명 앞에서 괴로워하는데, 이는 남성으로서 느끼는 경제적 압박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수많은 장성한 남성들이 무력하게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마당에 혼자 남은 바틀리라고 바다가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여성들이 바틀리 본인과 바다 이야기를 하느라 분주할 시에 바틀리는 밧줄의 행방을 물으며 극에 처음 등장한다. 자신의 앞날을 예견했던 것일까, 첫 등장부터 바틀리의 어조는 조용하고 슬프다(speaking quietly and sadly 390). 그의 등장 이전에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그의 음울한 심리상태는 그가 내다보는 미래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 예견해볼 수 있다. 한편 바틀리에 의해 말고삐로 요긴하게 쓰일 밧줄은 검은 발을 가진 돼지에게 무참히 씹히고 있었을 정도로 잘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390). 말고삐는 뒤늦게야 발견되어 안전한 곳에 보관되는데, 바틀리의 죽음이 유가족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바로 이런 말고삐와 같은 것일 터이다. 여성들은 이미 자포자기 상태에 가까우며 바틀리의 생사 여부는 그런 상황에 큰 영향력이 없다. 바다는 바틀리 생전 마지막 날에도 어김없이 성질을 누그러뜨릴 줄 모르지만 바틀리는 늦지 않으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캐슬린(Cathleen)의 말마따나 “바다로 나서는 일은 젊은 남성에겐 삶이나 마찬가지다”( It’s the life of a young man to be going on the sea 390). 바다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내에서 바틀리는 버둥거리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용, 그것에 '빠져든다.' 그는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어머니의 만류에는 귀를 닫고 누나에게 자신이 집을 비우면 해야 할 일들을 꼼꼼히 상기시켜준다.
두 번째는 형을 더 아끼는 어머니와 바틀리가 겪는 갈등이다(혹은 예전에 이미 ‘죽은’ 바틀리와 살아있는 바틀리가 겪는 갈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모리아가 먼 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좋은 말 한번 못해줄망정 불길한 소리만 늘어놓았지만 주린 배를 안고 떠나는 바틀리의 마지막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따르길”(The blessing of God on you 391)이다. 바틀리가 떠나고 나서도 모리아는 계속해서 아들을 다신 보지 못 할 거라 되뇌는데, 어쩌면 모리아는 바틀리와 마이클(Michael)의 환상을 보기 전부터 그들을 이미 마음에서 떠나보낸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극중에서 둘의 죽음은 한데 얽혀 거의 동일시되는 것 같아 보인다. 둘의 죽음은 모리아에겐 혼재되어 있는 죽음이다. 심지어 바틀리는 사고 당일 형의 옷을 입고 나가기도 한다(392)! 하지만 모리아의 환상에서 바틀리의 뒤를 따르는 회색 망아지 위에는 ‘번듯하게 차려입은’ 마이클이 앉아있다. 이 회색 망아지가 바틀리를 죽음으로 내몬 궁극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상황은 마치 망자가 된 마이클이 동생을 데리러 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토속신앙). 실질적으로 모리아에게 바틀리는 마이클이 죽은 날 함께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마이클을 위해 마련한 관은 곧 바틀리의 관으로 쓰이며, 마지막까지 바틀리의 몸은 마이클의 옷과 함께 장례를 치른다(395).
연이은 비보(悲報)의 행렬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일상을 살아나가는 젊은 세대에 속하는 캐슬린과 노라(Nora)와 구슬프게 곡을 하는 모리아의 모습은 과연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로서 그녀가 느꼈을 슬픔의 그늘에는 바틀리의 싸늘한 시신이 있다. 비록 어머니는 형과 함께 자신을 떠나보냈지만, 끝까지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비운의 죽음을 맞은 바틀리는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한 셈이다. 그는 익사한다. 한번은 어머니의 마음에서, 다른 한번은 모두가 향했던 그 바다에서.
* 작품에서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의 사용에 유의: white rocks, the pig with black feet
* 제목: 1. 모리아의 환상을 가장 잘 대변해 줌 (말을 타고 바다로 향하는 바틀리와 마이클) 2. sea를 운명으로 보고, riders를 전 인류로 확장하여 해석 가능
'독서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 리포트, 잠의 패러독스 (0) | 2021.04.09 |
---|---|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 William Shakespeare - Macbeth 02 (0) | 2021.04.05 |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고향』(Home)에 나타난 과거 다시 쓰기 리포트 (0) | 2021.03.25 |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 William Shakespeare - Macbeth 01 (0) | 2021.03.09 |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 James Joyce - Eveline (from Dubliners) (0) | 2021.03.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