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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 William Shakespeare - Macbeth 01

by 나의달님 202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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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읽은 뒤 "잠"이라는 소재에 착안해 글을 써보았습니다. 총 세 번에 나눠서 올립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글입니다. 


어둠이 세상에 짙게 드리우면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는 잠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 사실에는 모두가 쉽게 공감을 할 터다. 무려 백 개의 눈이 달렸다는 괴물 아르고스(Argos)도 잠에 취하게 되니 목전에 죽음을 두고도 눈을 모두 감아버리지 않았던가. 제 아무리 최고의 감시자 재목인 아르고스라도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자 그 많은 백 개의 눈도 하등의 쓸모가 없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헤르메스(Hermes)는 거인의 목을 댕강 베어버린다. 프시케(Psyche)의 일화 또한 잠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강하게 보여준다. 그녀가 지옥까지 발걸음 하여 페르세포네(Persephone)로부터 받은 상자에 가득 채워진 아름다움의 비밀이란 바로 영겁의 잠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토록 강력한 잠의 이끌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맥베스』(Macbeth)에서는 한 나라의 군주가 되었지만 밤마다 ‘불침번을 서는’ 불행한 인물, 맥베스(Macbeth)가 등장한다. 이는 그가 역심을 품고 던컨(Duncan)을 살해한 날 그가 잠(sleep) 또한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가 살인을 저지른 후 듣게 되는 정체모를 울림들은 맥베스가 그날 밤 살해한 것이 던컨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마치 잠인 듯, 마치 그것이 더 중요한 사실인 것처럼 하나같이 그가 잠을 살해했다는 고백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잠들지 못하리니! 맥베스는 잠을 살해한다”(Sleep no more! / Macbeth does murder sleep)(2.2.35-36) 라는 울림이 맥베스의 죄의식 혹은 불안으로 인한 불면증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표현이 ‘현재형’으로 기술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극의 이해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이 글은 잠을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것으로 보고 그 둘의 경계를 허물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제하려 들었던 맥베스에게는 역설적으로 결국 그 어떤 것에 대한 통제력도 남아있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다. 잠의 상실은 곧 상황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이며 맥베스가 잠을 살해하는 행위는 결국 그가 계속해서 현재(present)를 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실제로 그는 과거에 대한 죄의식과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 탓에 현재를 못 살게 된다. 끓어오르는 야망(vaulting ambition)이 그의 머리에 왕관을 씌웠고,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하길 누구보다도 두려워하는 맥베스는 모든 것을 제 통제 하에 두려하지만 그를 둘러싼 상황은, 즉 현재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그가 손을 쓸 수 없는 영역으로 이탈해 나간다. 결국 군주의 자리에 올랐지만, 처량하고 또 우습게도, 맥베스의 “왕위는 난쟁이가 거인에게 훔쳐 제 몸에 걸친 의복처럼 헐겁게 느껴진다”(Now he does feel his title / Hang loose about him like a giant’s robe / Upon a dwarfish thief)(5.3.20-22). 현재가 없는 자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잠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은 결국 삶의 의미의 상실이며 한 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갖는 어느 정도의 통제력 또한 송두리째 박탈당했음을 의미한다.

맥베스가 잠을 살해한다고 할 때, 행위 주체는 맥베스이며 우악스럽게 살해당하는 대상은 잠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강제성에 의해 잠을 자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말도 맞지만, 동시에 맥베스 자신이 잠을 자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말 또한 참이다. 그렇다면 왜 맥베스는 깨어있기를 자처하는가? 이는 사실 뻔한 질문인데 그가 어두운 시각에 모두가 잠이 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의 말을 빌리자면, “잠든 자와 망자는 한낱 그림에 불과하다”(the sleeping and the dead / Are but as pictures;)(2.2.52-53). 일단 잠에 들거나 죽음에 이르면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고작 배경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잠에 든 자와 망자는 상황에 어떠한 변화의 손길을 미칠 수 없음에도 장식적이고 부수적인 역할로서 자리를 차지하는 연극의 무대장치에 다름 아니다. 실례로 가장 덕망 높은 왕(a most sainted king)(4.3.109)인 던컨(Duncan)도 일단 잠에 들고나면 어느덧 그가 가진 위엄은 사라지고 레이디 맥베스에게도 제 목숨을 손쉽게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무력하고 볼품없는 늙은 노인에 불과한 존재가 된다. 그뿐인가, 왕의 침소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시종들은 만취해서 잠이 든 새 별안간 반역을 저지른 중죄인이 되어버렸고 어떤 발언권도 채 갖기도 전에 황천길에 나선다. 그들은 맥베스가 범죄를 행함에 있어 이용하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서 쉽게 관객의 뇌리에서 잊혀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잠을 자는 동안 아버지를 잃고 어느새 도망자 신세가 된 맬콤(Malcolm) 그리고 도널베인(Donalbain) 왕자가 있다. 일찍이 왕위계승자로 지목되었던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맬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진범인 맥베스는 왕자들에게 너무도 모욕적인 “존속살해”(parricide) 혐의까지 씌우려 든다(3.1.31). 이러한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보니 맥베스가 자발적으로 잠자길 꺼리는 모습에는 전연 이상할 것이 없다. “왕권을 주제로 한 가슴 벅찬 연극의 경사스러운 서막”(happy prologues to the swelling act/ Of the imperial theme)(1.3.127-28)이 열린 이상 주연배우는 어떤 행위든 일단 하고난 뒤에야 무대를 떠날 수 있는 법이다. 잠을 자지 않기로 선택함은 그 어떤 일에서든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멕베스의 간절한 열망을 반영한다. 무엇보다도 맥베스는 “생각에도 행동이라는 왕관을 씌워보려는” 자가 아니던가(To crown my thoughts with acts)(4.1.148)

 

본 논문에서 사용한 텍스트는 헌터(G. K. Hunter)가 편집한윌리엄 셰익스피어: 4대 비극(William Shakespeare: Four Tragedies) London: Penguin, 1994의 해당 작품에 의하며, 우리말 번역은 필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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