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기록

성인 영어소설/원서 추천: Leonard Chang - The Fruit ‘N Food

by 나의달님 2021. 4. 22.
반응형

 

레너드 장(Leonard Chang)의『식료품점』(The Fruit ‘N Food)은 미국 내 인종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은 작품입니다.

 

저는 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 작품 속에서, 대별 한국계 미국 이민 양상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물론 분석은 모두 작중에 나타난 인물의 모습을 토대로 합니다. (일반화로 비춰질까봐 무섭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책을 읽고 제 독서 감상을 참고해주세요! 

 

※ 이전 포스팅 [클릭

소중한 창작물을 함부로 도용하지 말아 주세요. 

 


    
1세대가 백인과 흑인 사이의 중간자로서 갈등을 겪는다면 2세대 이민자들은 그것과 더불어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의 중간자적 존재로서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준은 한국에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이 없고 톰은 한국에서 체류하던 시간이 자신에게 “공백”(blank 58)으로 남아있다고 고백하지만 그들은 한국인 부모, 이국적인 외모 등의 요인으로 인해 미국 사회에서도 미국시민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미국 내 한인 사회에 오롯이 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톰은 처음부터 이씨 부부에게 한국인이 아니며(You no Korean 4), 마지막까지 그는 이씨 부인에게 “멍청한 교포놈”(stupid gyupo 207)으로 인식되며 배척되어 마땅한 대상이 된다. 얼핏 보기에 톰은 성공에의 의지가 전혀 없고 준은 학업에 흥미가 없는 것으로, 둘은 전형적인 모델 마이너리티 범주에서 한참 비켜나 있는 인물들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신화 속에서 처절히 갈등하는 인물군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톰은 자신의 이기적이고 철없던 과거에 대해 많은 회한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 그는 이씨 부부의 식료품점을 “어떤 연유에서인지 과거와 일종의 연결점”(some inexplicable link to his past 13)과 같이 여긴다. 그렇기에 혈혈단신으로 부유하듯(drifting) 살아가던 그가 뿌리의식이 있는 고향으로 되돌아와 이씨 부부 아래에서 성실히 일하고자 하는 태도는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것이 ‘소속감’(belonginess)이었음에도 불구하고(225) 끝내 그는 그곳을 찾지 못해 “꿈의 세계로 더 깊숙이 침잠하고 더 긴 시간 동안 부유하게 된다”(He withdraws more into his world of dreams, and drifts longer and longer 226). 그는 현재 혼수상태에 있다.

전에는 인종갈등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톰은 초반에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를 위해 일한다고?”(I’m working for a racist? 17)라며 이씨 부인의 명백한 흑인차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흑인이 주소비자층을 이루는 식료품점에서 계속 일하게 되면서 그는 인종혐오와 차별을 피부로 느끼게 되고 그가 인종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기존에 견지하던 것과는 극명히 달라진다. 주로 흑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 사례들을 접하게 된 탓에 그는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56), 개인의 잘잘못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 때문에 다른 인종의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단 사실 또한 통렬히 깨닫는다(They didn’t even know him, but they hated him 151).

특히 ‘시선’의 문제는 톰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식료품점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란 노동을 통해 창출해내는 수입이다. 이씨 부부가 자녀의 교육비를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면 톰은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돈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는 식료품점에 애정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돈이 손에 쥐어진다면 최대한 복잡한 상황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한다(Didn’t matter. He had his money 55).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데 동원되는 많은 노동의 형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돈이 모이는 계산대, 즉 자본의 성소(sanctuary)를 수호하는 일이 된다. 처음 톰은 계산대를 잡는 일이 가장 쉬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곧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48). 왜냐하면 그곳은 감시가 이뤄지는 거점지역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좀도둑질”(stealings 16)이 흔히 일어나기 때문에 항시 “바짝 긴장하고”(tensing up) 또 어떤 범죄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걱정하며”(worrying about)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장소다(49). 감시 거울을 흘깃거리며 톰은 다양한 인종의 소비자들과 마주한다.    

가게 내부와 외부에서 발생하는 시선의 교환은 미국 사회 내의 인종 관계로 확장될 수 있다. 예컨대 ‘돈을 가진’이씨 부인은 고용주로서 톰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그의 거동을 주시함과 동시에 전반적으로 식료품점 내부를 관망한다(35). 그리고 톰은 다양한 인종 집단에 속하는 손님들을 감시하는데 톰과 이씨 부인은 유독 흑인들을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물론 손님들을 향한 시선은 이따금씩 전향하여 식료품점 내부 사람들에게로 되돌아오며(105), 식료품점 내부에서 손님들을 감시하던 이씨 부부와 토마스는 후반부에선 불매운동을 진행하는 외부인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시선이 교차하는 동안 긴장은 계속해서 도사리고 있으며 시선이 닿는 곳에서는 자기검열이 이뤄진다. 이 시선의 구조 외곽에는 패권을 쥔 자로서 백인들이 있다. 시선에서 자유로운 만큼 그들은 주로 사건을 조망하고 방기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식료품점 내부에서 전개되는 시선 구조는 작품 내 대표적인 두 소수민족 간 갈등, 즉 한흑갈등 양상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톰은 식료품점에서 벗어나 있을 시에도 계속해서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그는 불면증(38)에 시달리는 허약한 신체를 가진 인물로서 단 한 순간도 편히 ‘안식’할 수 없다. 아마 레너드 장은 이 인물을 통해 다양한 인종 간의 긴장과 마찰 속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 사회를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인가가 조금만 엇나가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위험이 항존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안위에 큰 위협을 느끼는 톰의 가장 주된 정서는 당혹감이다. 그는 “불확실성”(uncertainty 2) 속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로 남아있다(Now, he is just confused 1). 이민 1세대의 꿈이 인종 간의 갈등 속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목도하며 그들의 배턴(baton)을 이어받아 살아나가야 하는 2세대는 같은 환경에서 그들이 어떻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실현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불매운동이 점진적으로 확장되어갈 때 갈등은 주로 흑인과 아시아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이것이 곧 같은 인종 내적인 분리로 이어지기도 하기에 더욱 암담한 상황이 벌어진다. 톰의 혼란스러움은 배가된다. 예컨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식료품점에 흑인이 들어갈 때 “배신자”(Traitor! 168) 낙인을 찍으며 인격적인 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단순히 인종적인 정체성만으로 자신들의 생각에 모든 흑인들이 동조하길 요구하는 것이다. 한편 이씨 부인은 “그가 이 모든 일의 원인이잖아요”(He is the cause of this 205)라며 톰을 책망하기에만 급급하다. 이에 톰은 불매운동이 야기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란 사실을 회피코자 했는데 그가 보기에 “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초래하기란 불가능했다”(201). 실제로 모든 일은 다양한 원인들이 얼키설키 얽혀서 진행되기 때문에 분명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쉽게 좌절된다. 톰의 손에 들린 총의 총구는 결국 자신과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하게 되는데, 톰은 흑인 노인인 해리스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자신이 흑인으로부터 들었던 “칭크”(chink)라는 인종차별적 언사로 다른 아시아인을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212). 그는 작품 전반에 걸쳐 현실과의 연계성을 찾는 데 있어 종종 어려움을 표현하곤 했는데(This isn’t real. I’m not real 21), 마침내는 시도를 아예 포기하고 현실 세계와의 단절을 선언한다(He doesn’t want the outside world to exist 226).

불운한 최후에도 불구하고 이씨 부부가 다시 성공을 쟁취하고자 하는 일말의 가능성과 의지를 보여줬다면 톰은 거의 회생이 불가능한 지경으로 작품 초입과 결미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톰의 사례로써 드디어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에 어느 정도 모순과 균열이 보이게 되는 것일까? 톰은 식료품점에서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말이나마 처지의 개선을 경험하기는커녕 아예 눈이 먼 채로(blind 1)―현실인식이 불가능해진 상태로―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2세대인 토마스, 이 특수한 개인의 실패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곧 경제적 성공과 일맥상통하지만 톰은 작품 초입에서부터 무직
상태이며, 경제력을 상징하는 ‘지갑’을 상실한 인물로 등장한다. “이제 지갑이 없으니 아마도 그는 존재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maybe now without his wallet he didn't exist 9)란 말이 경제력이 없는 톰은 “정체성”(identity 8)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따라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라 봐도 무방하단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이씨 부부의 경우 부(富)를 차곡차곡 축적하고 있었기에 자본주의 논리를 기저로 한 인종갈등에서 주요 표적이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톰에게는, 그가 지갑을 잃어버린 후 끝내 신분증을 재발급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기회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은 그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이 마치 그 개인이 애초에 ‘글러먹은’씨앗이기 때문인 것처럼―인종문제를 은폐하며―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가 “재활”(rehabilitation 2)시설에서 어느 정도 단련된 상태로 언젠가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혹여나 그렇게 된다고 하면 그는 이전과 다름없는 환경 속에서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에도 다시 한번 그가 실패하고 넘어진다면 그것은 순전히 경제적 성공을 향한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없는 그의 무능력 탓으로 여겨진다(his incapacity to see the top of unfamiliar steps, to guide himself towards the door 1). 이처럼 1세대로부터 넘겨받은 신화는 2세대에 와서도 잔존한다. 각기 다른 방식이나마 그들은 모두 백인주류사회가 만든 지침(guidance) 하에서 살아간다.
    


    
임진희는 이민자 멘탈리티의 특징으로서 경제적 척도로 인생 전반의 성패를 판가름하려는 태도와 2세대에 대한 큰 기대감을 지적한다. 즉 1세대는 자신들은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네이티브가 아니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지만 2세대는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현지인과 경쟁해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더 수월할 것이라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2세대에게 자신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대신 실현할 의무를 짊어지운다(159-60). 자녀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려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1세대의 전형에 이씨 부부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2세대인 준은 그것이 아무리 부모가 지운 것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꿈을 살아가는 일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되고 계속해서 부모의 뜻과 엇나가게 된다(they’re putting a lot of pressure 72). 톰이 처음으로 식료품점에 들어섰을 때부터 이씨 부인은 준을 “꾸짖는”(scolding 4) 중이었듯 이씨 부부와 준의 소통의 좌절, 즉 불통(不通)의 지점은 거듭 포착된다. 이씨 부인은 사업이 망한 후에도 끝까지 준에게 숙제는 다 끝마쳤냐고 묻는다(222).

준은 교육, 직업, 돈이라는 이민자가 추구해야 할 세 가지 가치 중 본인들이 돈을 벌어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대가로 딸은 세 가지 모두를 성취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태도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삶의 태도를 답습하게 되었기 때문에 방황한다(my parents have drilled this into me so that that’s all I can think about 162). 그녀는 학업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털어놓으면서도(154) 부모님의 생각대로 좋은 대학에 가서 공부해 전문직을 얻겠단 생각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롭지 못한데, 이는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은 모습이다(I want to go to college, then law school 138). 흑인으로 등장하는 해리스조차 준의 아이비리그 진학에 관심을 보이듯, 우수한 학업 성과를 보이는 아시아계 학생으로서 모델 마이너리티 이미지는 계속해서 그녀를 포섭하려 든다. 그러나 자신의 꿈과 부모님의 꿈이 거의 분간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는 지나치게 일만 하는 부모님의 상황을 역이용(71)해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흡연, 음주, 성관계 등의 일탈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게 된다.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을 부모님이 알면 뭐라고 말씀하시겠냐고 묻는 톰에게 준은 “아무 말도 안 할걸. 어차피 엄마랑 아빤 모를 테니까”(134)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준은 부모님에 대한 반감이 너무도 큰 나머지 그들이 불매운동이 진행되며 겪는 고충에도 놀라울 정도로 “냉담한 태도”(nonchalant about her attitude 161)로 일관하는 듯 보인다.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딘 현실 감각을 가진 준은 톰에게 부모님 사업이 잘 되지 않으면 자신의 대학 등록금은 누가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고 고백한다(162). 이런 태도에는 분명 결함이 있지만 다른 걱정은 우리가 다 할 터이니 딸은 학업에만 열중하길 바라는 부모님(222) 하에서 자라온 준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준은 많은 측면에서 비판적 사고 없이 부모님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해왔다. 예컨대 그녀가 보기에 엄마는 인종차별주의자가 맞지만 자신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흑인으로 구성된 갱, 무장 강도에 의한 범죄에 여러 번 노출된 사람에게 어떻게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겠냐는 논리다(74-75). 그녀는 학업에 대한 태도를 비롯 부모님의 인종차별적 인식 또한 자연스럽게 전수받는다.

준이 “내가 그 재미있는 걸 놓쳤다니 아쉽네”(137)라며 비참한 현실, 즉 부모님이 불매운동과 미디어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구경거리”(excitement 137)라고 표현할 때 이민 1세대와 2세대가 본인들의 문제에만 너무도 치중한 나머지 가족 간의 유대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는지 극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다. 그들은 당장 뉴저지(New Jersey)에 있는 친척의 세탁소에서 일하며 쌓인 빚을 갚아나가야만 하지 않던가(223).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준의 질문에 이씨 부인은 계속해서 “아무 문제도 없다”(nothing 224)고 답할 것이고, 준은 앞으로도 부모님의 꿈을 대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준이 혹여나 대학 진학에 실패를 할지라도 부모님이 자신을 뒷바라지할 수 있는 한 당분간 그녀는 큰 걱정 없이 지내도 괜찮다.
   
   

    
모델 마이너리티 개념이 계속해서 만연하는 한 개인의 성공은 계속해서 집단의 성공으로 확장해석 될 것이지만 개인의 실패는 레이더망을 벗어나 감지되지 않을 터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성공신화의 모순점을 꼬집고 있긴 하지만 실제 미국에서 생활하는 많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매순간 근면하고, 성실하고, 인내한다면 현실적인 학업과 노동의 장에서,
곧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꾸며 산다. 그렇다면 모델 마이너리티 유형화는 계속해서 공고화되고 소수민족들은 어떤 시원한 해결책도 없이 매번 개인들의 아픔으로 사회 문제를 덮어야 한단 말인가?

이 소설은 1992년에 발생한 L.A. 폭동 사건과 많은 점에서 닮아있는데, 이선주는 이 폭동사건을 “필요한 때에는 모범소수민족으로 치켜세우며 다른 소수민족을 경계 짓다가 주도세력이 위협받는 순간에는 담보로 희생시킬 수 있는 경계의 시민으로 아시아계를 대한”명백한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70). 마찬가지로 작품에서 백인은 소동(riot)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물을 책임도 부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은 처음부터 톰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위압적이고 위해적인 “흰빛”(white light 10)을 등장시키게 되며 암시적으로라도 “백인성”(whiteness) 담론을 문제의 중심에 함입시키고자 했다. 즉 톰이 여러 번 마주하는 흰빛은 백인주도세력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빛은 “눈이 멀게 만들고”(blinding), “시각을 마비시키는”(searing his vision)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서 톰은 이유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빛과 대면하며 공포와 전율을 느낀다(41). 톰은 이 빛의 존재에 대해 나름대로 고찰하고 준에게 털어놓기도 하는데 이러한 그의 태도는 백인주류사회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라면 톰이 처음에 자신에 괴롭히던 흰빛에 차차 적응해나가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 빛으로 인해 아파하던 톰이 빛으로 둘러싸인 상황 속에서도 빠져나오려 버둥거리지 않고 침착하고 침묵할 수 있게 된 것은 흰빛(백인 세력)을 대하는 그의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he was not in pain, nor was he struggling in the midst of this. He was calm. He was quiet 215). 즉 그의 문제의식은 차츰 힘을 잃어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그러나 낙담하기엔 아직 이른데, 톰이 백색을 가시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백인성이 가지는 힘은 그것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표준’이라고 여겨져 굳이 명시할 필요가 없는, 그것이 가지는 ‘비가시성’에 있다. 백인성은 자신을 ‘식별불가능하게 함으로써’ 헤게모니를 유지하는데, 웨스트(West)는 백인성을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기에 편재하면서도 비가시적인”(386) 모순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백인성이 어떤 것을 보호하고 싶어 하는지, 백인성이 표출하는 불안과 초조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 된다. 작품에서 톰은 미약하게나마 백인성을 인식했고 문제의식을 표출했다.

덧붙여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으로 내세우며 소극적으로 살아가던 톰이 이씨 부부가 안전한지 확인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식료품점을 찾아갈 용기를 낸다는 점은 크게 주목할 만하다(207). 이후 그가 흑인 노인인 해리스를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나설 때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톰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어떤 인종적 차이에 기반한 차별과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다. 이러한 톰의 문제의식과 용기는 인종주의 하에서 개인들이 겪는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가능성을 함께 보여준다 하겠다.
 
인용문헌
    
바우만, 지그문트. 『액체근대』. 이일수 옮김. 서울: 강, 2009. Print.
이선주. 「아시아계 이민의 확산과 미국 주도문화세력의 경계짓기 고찰」『새한영어영문학』  50.3 (2008): 59-83. Print.
이정덕. “LA 한인단체와 다민족 관계.” 『다민족 관계 속의 LA한인』. 양영균 외. 83-131. Print.
임진희. 「한흑 도시공간으로서의 레너드 장의 『식료품점』『현대영미소설』 17.2 (2010): 153-75. Print.
Casino Khier. 「Asian Americans Are the Poorest Minority Group in New York City」.『Nextshark』2017 3 1. Web. 2017 06 02.
Chang, Leonard. The Fruit‘N Food. Washington: Black Heron Press, 1996.  Print.
Min, Pyong Gap. “Problems of Korean Immigrant Entrepreneurs.”  The International  Migration Review 24.3 (1990): 436-55. Print.
West, R. Thomas. “White Power, White Fear." Rhetoric Review 24.4 (2005): 385-88.  Print.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