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리즈물의 두 번째 글입니다. 첫 번째 포스팅은 여기서 확인해주세요:
가족에 관한 소설: 이창래 Changrae Lee의 Aloft (작품개괄 및 분석 1~6장) (tistory.com)
아직 정돈되지 않은 글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다양한 시선에서 작품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장에서 6장까지만 다룹니다! 소중한 창작물을 함부로 도용하지 말아 주세요 **
3. 비상(飛上)하다: 추락에 대한 두려움
이 소설은 업다이크(John Updike), 치버(John Cheever)의 전통을 이어 근교 주택가에 사는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남성의 “심리적 위기”를 그린 소설로 볼 수도 있다. 즉 제리가 거주하는 롱 아일랜드(Long Island)가 단순한 장소의 의미를 넘어서 제리의 심리 상태를 반영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근교는 단연 미국의 가장 전형적인 주거지이자 백인 중산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갖는다(김진경 38-39). 김진경은 “백인 중산층으로 이루어진 동질화된 공간이라는 근교 개념에는 균질화된 백색 공간의 표면적인 평온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상징으로서 근교의 독립된 집을 소유하려는 계층적 욕구, 그에 따라 여성의 영역이었던 집이 경제활동의 주체인 남성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되는 젠더의 문제, 독립된 집이 상징하는 바 독립된 자아와 개성을 확보하려는 욕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종적 갈등 등이 역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즉, 근교소설은 백인 중산층의 이야기 너머로 그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이 충돌하는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40).
그런데 흥미로운 반전은 자아와 개성을 찾아 자리 잡은 근교 지역이 오히려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 심리적 빈곤함, 소외와 박탈감, 획일화로 얼룩져있다는 점이다. 근교는 “외부세계로부터의 휴식처가 아니라 온갖 몰개성화된 소비재들이 구매를 유혹하고 대량으로 유입되는 소비의 장”으로, 근교 거주자들은 집을 이루는 사물들 및 가족들과 “정서적 연계성”을 이루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된다(김진경 44). 같은 맥락에서 유쾌하지 않은 현실과의 대면을 기피하려는 성향을 가진, 사물 및 가족들과 그럴듯한 정서적 연계성을 찾지 못한 제리가 하늘로 비상하는 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상공에서 그가 지상의 완벽함을 잠정적으로 느낄 수는 있을지언정 그곳도 그의 완벽한 도피처는 되지 못한다. 상공에서 그는 끊임없이 추락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려야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락의 두려움은 “중산층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김진경 45)인 경제계급 구도에서의 하락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리고 제리가 구입한 경비행기가 애초에 아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듯, 조만간 그도 자신에게 그다지 반갑지 않은 상황을 직면해야 할 때가 올 것을 예견해 볼 수 있다.
*** 저카(Catherine Jurca)는 “근교문학의 기본 정조를 물질적 풍요속의 소외와 박탈감(dispossession)과 자기연민(self-pity)으로 인식하고 이것을 화이트 디아스포라(white diaspora)라고 정의”(김진경 41)한다. 이 정의를 바탕으로 그녀는 근교문학이 자칫하면 가장 큰 특권층을 박해받는 피해자 계층으로 재창조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시각을 드러낸다.
And I know, too, from up here, that I can’t see the messy rest, none of the pedestrian, sea-level flotsam that surely blemishes our good scene. . .All of which, for the moment, is more than okay with me. Is that okay? Okay. (2-3)
[U]nless I’m struck down by some ruinous long-term disability, I’ll be okay. (10)
제리는 계속해서 자신이 괜찮다(혹은 괜찮을 것이다)는 점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불안(insecurity)을 폭로한다. 자연적 수명이 증가한 시대에 일찍 은퇴한 제리가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한 돈을 마련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처사다(노후에 대한 불안은 제리뿐만 아니라 핼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계속해서 예상되는 변수들을 헤아려보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장기적인 불구”(10)가 되지 않는 이상 모두 괜찮을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여본다.
[A]nd the temptation is to interpret this muted-ness as muteness, my signage ever faint, and disappearing. This is probably true. I am disappearing. But let me reveal a secret. I have been disappearing for years. (22)
제리는 상공에서 자신의 집을 구분할 수 있도록 지붕 위에 어두운 지붕널을 이어 X자 표시를 해둔다. 그는 이 표식을 상공에서 발견할 때마다 모종의 따뜻함을 느끼는데, 이는 자신의 집을 알아보았다는 일차적인 감정 때문만이 아니다. 제리가 표식을 보며 흡족해하는 것은 이 X표시가 “교외의 깊은 숲속에서 소리치는 이 정체불분명한 남자”(this mystery man calling out from deep in the suburban wood 21)(=제리)만의 고유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리가 지상에서 멀어질수록 간신히 보이는 이 표시를 사라지고 있는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김진경은 “제리의 자아는 마치 묵음의 아이콘처럼 표현의 출구를 상실한 “침묵당함”(muted-ness)의 상태이자, 결국 자신이 말할 수 있다는 것조차 망각하는 “침묵”(muteness)의 상태”라고 주장한다(48). 극단적으로 말해 지극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을 사는 제리에게 선고된 형은 (뿌리 내리지 못한) “존재의 소멸”이다.
I can’t quell this steady pulsing dread that trouble still lies ahead for him. Because when you think of it, the truly depressing thing is that the trouble will probably not be a limitation of Sir Harold himself or his wondrous technology but just the fact of something as guileless as the winds . . . This is why I fly my Donnie only when the sky is completely clear, with no threat of weather for at least another day. . . Of course this also means I’ve never ranged too far from here. . .(144)
- 제리와 (그가 각별한 관심을 쏟는) 해롤드 경(Sir Harold)과의 유사성, 해롤드 경의 최후가 시사하는 바
- 제리는 혹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해롤드 경 자신의 한계나 뛰어난 기술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바람과 같은 “악의 없는” 외부적 요인이란 사실이 진정 우울한 것이라 지적한다. 아마 그가 지속적으로 취하는 방관자적 태도도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더라도 다른 이들의 존재가 자신의 성패를 결정할 수 있다는 신념(혹은 못마땅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 앞서 언급했듯, 추락에 대한 두려움은 경제계급 구도에서의 하락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제리가 뛰어난 사업가도 아닌데 가업을 어떻게든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돈을 벌고자 하는 압박(fierce mercenary pressure 151)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최대한 외부 요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신의 안전과 안녕을 확보하려 노력하는데 도니를 몰 때도 그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에만 비행하는가 하면, 자신에게 익숙한 경로를 벗어나는 장거리 비행은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는 추락을 그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I’ve always thought that Ivy Acres spent too much dough on the glossy brochures and advertisements and then on landscaping the grounds. . . Like everything else here the money is spent by management for the sake of us visitors, the same way pet food is designed to please the owners, to assure us in our wishful thinking that our folks are already, as it were, in a better place. (163)
행크가 지내는 최고급 양로원 아이비 에이커스(Ivy Acres)를 보며 제리가 느끼는 바는 양로원에서는 정작 그곳에서 거주하는 노인들을 위해 공을 들인다기 보다는, 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부수적인 홍보물―방문객에게 보여지는―에 더 큰 돈을 할애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실속은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물질적 풍요로움은 사람들이 현실에 눈을 멀게 하는 하나의 요인(혹은 현실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는 구실)으로 작용한다. 행크를 양로원에 보내고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다 했다고 나름 자위하는 아들 제리, 아들인 잭(Jack)의 호화로운 대저택과 급속도로 진행되는 사업 확장을 보며 그에겐 어떠한 문제도 없을 거라 지레 짐작하는 제리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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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근교의 일반적인 특성에서 더 나아가 김진경이 주목하는 사실은 본 작품에서 그려지는 근교는 “유색인을 피해 도시로부터 이동한 백인 중산층들로 이루어진 동질화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50). 김진경은 이 작품이 “제리가 극화하는 근교 백인 중산층의 소외와 박탈감이라는 화이트 디아스포라적 정서를 옹호하고 있지 않다”(50)고 주장한다. 즉 이창래는 백인 특권층을 “박탈당한 계급이자 피해자”(50)로 만들며 제리의 삶에 대한 태도, 권태를 미화시키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녀는 작품에서 전형적인 백인 중심의 근교에서 벗어난 형태의 근교가 그려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화이트 디아스포라적 서사에 반(反)하는 데이지, 리타, 테레사의 대항서사를 강조한다(49-54).
이곳은 오히려 다분히 혼종화된 공간인데, 제리에게 경비행기를 파는 흑인 남성 핼을 비롯, 파밍빌(Farmingvill)의 히스패닉 노동자들, 여행사의 스페인어 담당 직원, 잭의 집 가정부 로자리오(Rosario)와 같은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이를 증명한다.
[B]ecause we’re an ethnically jumbled bunch, a grab bag miscegenation of Korean (Daisy) and Italian (us Battles) and English-German (Eunice) expressing itself in my and Jack’s offspring with particularly handsome and even stunning results. As a group you can’t really tell what the hell we are. . .(69)
무엇보다도 제리의 가정 자체가 이미 혼종화된 공간이다. 제리는 한국인 전 부인에 이어 푸에토리코 출신 리타와 오랜 기간 동거하는 등 다른 인종 여성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여러 인종들이 섞인 자신과 잭의 자식들이 특별히 더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특히 잭의 경우 완전히 백인 같은 외모로 거의 언제나 백인으로 “통했다”(passed 70). 이런 신체적 특징이 그를 보다 성공적으로 미국 사회에 동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음이 자명하며, 따라서 그는 테레사와는 달리 인종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4. Racial Discourse
The family name was originally Battaglia, but my father and uncles decided early on to change their name to Battle for the usual reasons immigrants and others like them will do, for the sake of familiarity and ease of use and to herald a new and optimistic beginning . . . Battle, too, is a name for a business, because it’s simple and memorable, ethnically indistinct, and then squarely patriotic, though in a subtle sort of way. (23)
본래 제리 선조들의 성은 “바따글리아”(Battaglia)였지만, 그의 아버지 대에서 “배틀”(Battle)로 바꾸게 된다. 성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 많은 이유를 열거하지만, 이 변화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원래의 성이 진하게 드러내는 인종/민족적 표식을 불분명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수식어가 따로 붙지 않는 미국인 되기). 처음 미국에 이민을 왔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행크와 그의 형제들은 이민 2세대로서 초기엔 뉴욕의 할렘 가에서 전전하며 인종차별로 인해 분노를 키우기도 했지만, 조경 사업의 낙관적 전망을 보고 일찍이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따라서 “배틀”이라는 성의 채택은 “미국 사회에 속하기 위한 이민 ‘바따글리아’의 투쟁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 투쟁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지닌다”(박수정 91).
이선주는『떠오름』에서는 인종 문제가 “중심/주변, 지배/정복, 원본/복사본, 우월/저열과 같은 이분법적으로 정해진 주변적 자리에서 돌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이 작품에서는 “인종이 나올 거라고 예측되지 않았던 중심부에서, 도처에서, 수시로, 무의식적으로 돌출”한다(148). 특히 1장에서 제리가 경비행기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이를 잘 확인해볼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불쑥불쑥 출몰하는 인종 문제는 마치 대기 중에 떠다니기라도 하듯, 제리와 주변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스며들어있다.
And I should probably not so parenthetically mention right now that Hal was black. This surprised me, first because Shari wasn’t, being instead your typical Long Island white lady in tomato-red shorts and a stenciled designer T-shirt, and then because there aren’t many minorities in this area, period, and even fewer who are hobbyist pilots. . . (11)
중고 경비행기를 구입하러 주인을 찾아간 제리는 친절하고 매력적인 백인 여성의 안내를 받는데 안에서 셰리의 돌봄을 받는 주체는 병색이 있는, 굉장히 무기력한 ‘흑인’ 남성 핼이다. 제리는 이러한 사실을 괄호 안에 넣듯 “parenthetically”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핼이 흑인임을 대놓고 언급하는데 이러한 사실 뒤에 인종을 의식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변명이 뒤따른다.
“Because sometimes guys realize at the last second they don’t want to buy a used plane. You know what I’m talking about, Jerry?”
... So the listing agent suggest they consider “depersonalizing” the house, by which she meant taking down the family pictures, and anything else like it, as the owners were black. (12-13)
핼이 “중고인”(used)이라는 표현을 사용해가며 제리의 구매의사를 거듭 확인하는 모습과 이어서 제리가 그 의미를 이해했다는 듯 자신의 관련 경험을 서술하는 상황은 여기서 “used”의 의미가 “흑인이 몰던”과 같음을 시사한다. 제리가 예전에 조경 사업을 했던 한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집은 수백만 달러에 매물로 내놓아졌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구매를 하길 꺼렸다. 가격을 반으로 낮춰도 팔리지 않았던 집을 결국 팔게 된 과정에는 집을 “depersonalizing”하는 일이 있었다. 즉 다소 불쾌하지만, 흑인 소유의 집에서 가족사진을 비롯한 모든 것을 떼어내어 건물에 스며든 인종적 색채를 지우는 것이 그 해법이었다. 집은 depersonalized 된 후에야 비로소 원래 내놓은 가격보다 비싸게 팔린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제리와 핼이 그러면서 그렇지 않은 듯 서로의 인종적 정체성을 철저하게 의식한다는 사실이다. 제리는 핼에게 자신의 비행기 조종 경력에 대해서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채) 거짓으로 과장해서 말하며(13), 핼 또한 제리에게 자신의 재정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17). 이후 제리는 “인종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자의식적 태도”(이선주 152)를 발현, 비행기의 값을 흥정도 하지 않고 사버린다.
He talks softly, with an almost Western cowboyish loll to his speech, which frankly is strange to hear from an Asian face. (72)
제리가 테레사의 남편이 될 폴(Paul)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 이처럼 인종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인식되는, 그래서 사물인식의 중대한 방법론이 되어 버린 양”(이선주 157-58) 반복된다. 제리는 인종차별적 의도가 없는 경우에도 (종종 즉흥적으로) 인종 현상을 지각하여 굳이 언급한다. 인종적 사고가 일종의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다.
*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 폴과 이창래 작가의 연계성(“아시아계” 꼬리표가 붙는)
김진경. 「근교소설의 전복적 텍스트로서 이창래의 『가족』 읽기」.『미국소설』 23.3 (2016): 37-58. Print.
박수정. 「나의 이웃, 나의 박해자인 가족: 이창래의 『비상』 과 타자와의 대면」.『현대영미소설』18.1 (2011): 35-57. Print.
_____. 「배틀 가의 미친 여자들: 이창래의 『비상』 에 나타난 가부장제, 인종, 젠더」.『현대영미소설』16.1 (2009): 87-109. Print.
이선주. 「혼종화 시대의 인종화 프로세스―이창래의 『비상』을 중심으로」. 『영미문화』 14.1 (2014): 141-63. Print.
Chang-rae, Lee. Aloft. London: Bloomsbury, 2005.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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