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작가, 이창래의 Aloft란 작품을 다루는 포스팅을 준비했습니다.
한국 출판사 RHK에서는 본 작품을『가족』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바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1. 어떤 작품일까?
이 작품은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서, 일찍이 가업인 조경 사업에서 은퇴 후 여행사에서 취미 삼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경비행기 도니(Donnie)를 홀로 몰며 소일하는 이제 막 60대에 접어드려는 제리 배틀(Jerry Battle)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가 경비행기 도니를 몰면서 일정 거리를 두고 상공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는 그의 인생을 포함한 모든 것이 실로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물론, 기실은 그렇지 않다. 완벽해 보였던 것은 제리가 평생 주변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보다는 항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방관자적인 태도를 견지해왔기 때문일 뿐.
하지만 작품에서 이창래는 제리를 기어이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을 한다. 달리 말하면, 작중에서는 그가 5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벽함 이면의 불안정한 상황들을 직시하고 문제들의 중심으로 함입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 부인과 사별한 후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온 동반자 리타(Rita)와의 결별, 윗대가 일궈놓은 가업이 아들 세대에서 파산 직전으로 몰린 위태로운 상황, 딸인 테레사(Theresa)의 임신과 암 발병 사실, 양로원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아버지까지, 일견 완벽함이 세차게 산산조각 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일련의 문제들에 제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지, 가족적인 가치가 과연 깨어지는지 혹은 회복되는지를 확인하며 동시에 그 속에 깊게 스며든 인종, 젠더, 계층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작품의 묘미다. 무엇보다도,『떠오름』(Aloft)은 이창래의 두 전 작품들과는 큰 차별성을 보인다. 전 두 작품의 주인공들이 미국 태생의 한인 혹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일본과 미국에 차례로 귀화하는 등 미국 사회의 주변부 인물로 나타났다면, 본 작품에서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미국 교외 지역에서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성공적으로 주류로 편입된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에서는 한국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관심보다는 백인 남성 주인공을 통해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두드러지기에 평단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이창래는 본 작품의 한국어 역간을 기념한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을 계기로 미국 평단이 자신을 아시아계 미국작가가 아니라 ‘미국 작가’로서 평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이창래는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한 사람이 완전히 주류로 편입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 또한 드러냈다. 그는 제리가 비록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인물이지만 여전히 여러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본인(제리)도 어느 정도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2. 불안을 야기하는 존재, '가족' (1~6장까지의 분석글 중 첫 번째임)
*** 한국 출판사 RHK에서는 본 작품을『가족』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바 있다. 번역가 정영문은 이 작품을 한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평범한 가정사를 통해 드러나는 “현대 인간관계의 허약함과 영속적 가치에 대한 상실감”을 중심 주제로 꼽았다. 이는 한국 독자들이 미국 내 인종 문제 보다는 가족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더 큰 관심을 가질 것이란 출판사의 판단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익숙함과 결별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자에게서 어떤 낯선 느낌을 갖게 되면서 불편해지는 순간이 바로 불안이다. 불안은 집 밖에 있는 느낌이다. 불편함이다. 환대의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환대란 주인이 ‘운하임리히,’ 즉 ‘집 같지 않은’ 불편한 처지에 놓여있는 손님으로 하여금 내 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일체의 수고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이때 주인은 불편함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손님이 온 이상, 내 집은 더 이상 편안해질 수 없다”(한용재 525).
작품의 전반부에서 그려지는 가족은 생판 모르는 남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존재다. 또한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나의 비밀과 치부를 알게 되는, 불편하고도 어색한,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아버지 행크(Hank)가 가족 모임 때 화장실에서 봉변을 당하자, 제리는 엉망이 된 화장실을 정리하고 오물이 묻은 아버지를 손수 씻긴다. 이후 바지를 아버지에게 벗어준 그는 팬티 차림으로 화장실 밖을 나서 손주의 비웃음을 산다(85-87). 이후 그가 오랜만에 샤워실에서 아내 데이지(Daisy)와 가진 격렬한 성관계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것은 딸 테레사이며(108), 보비(Bobby)의 추도식이 행해진 날에 ‘보비의 침실’에서 보비의 전 여자 친구와 제리가 이상한 자세로 엉켜있는 상황을 목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행크다(155). 이와 관련, 데이지가 죽기 직전 벌거벗겨진, 한없이 유약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누군지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I bought this plane not for work or travel or the pure wondrous thrill of flight. . .but for the no doubt seriously unexamined reason of my just having to get out of the house. (3)
제리가 도니를 구입한 이유도 단순히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F]or the allure of traveling for me has never been in searching out the little-known pieve or backroad auberge but standing squint-eyed amidst the sunbaked rubble of some celebrated ruin like Taormina or Machu Picchu in the obliging company of just-minted acquaintances of strictly limited duration and knowing that wherever I go I’ll be able to communicate with fellow strangers over the glories of this world. (27-28)
더불어 제리는 세계를 두 번 넘게 여행할 수 있었던 여행광이기도 한데(정복자적인 면모가 엿보임) 이 또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여행의 매력이란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찾아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막 새로 알게 되었지만,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는 ‘낯선’ 사람들과 세계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있음을 밝힌다(지속성 있는 관계 맺기를 어려워 함).
And it occurred to me in this new millennial life of instant and ubiquitous connection, you don’t in fact communicate so much as leave messages for one another, these odd improvisational performances, . . . And then when you do finally reach someone, everyone’s so out of practice or too hopeful or else embittered that you wonder if it would be better not to attempt contact at all. (7-8)
첫 비행연습을 하기 전 제리는 왠지 모를 극도의 초조함을 느끼고 겁을 먹는다. 그는 아들과 딸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음성 사서함의 기계음만이 그를 반긴다. 다음으로 아버지와의 통화를 시도하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세상의 지루함과 고독이 만들어지는 곳”(the place where they make the world’s boredom and isolation 6), 즉 양로원이라는 기형적인(monstrous) 곳에 자신을 넣어놓았다며 아들을 책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제리가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아버지를 ‘최고급’ 양로원에 위탁했듯, 배틀 가(家) 사람들은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하지는 않지만 굳이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려고 들지도 않으며 서로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제리가 말하듯, 현대 사람들은 실제적 ‘소통’을 하기보다는 그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남길 뿐, 오히려 속으로는 서로 연락이 닿지 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것이다.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는 사실 자신의 소통하지 않는 삶을 정당화하려는 변명이다.
[T]hat I’m one to leap up from the mat to aid all manner of strangers and tourists and other wide-eyed foreigners but when it comes to loved ones and family I can hardly ungear myself from the La-Z-Boy, and want only succor and happy sufferance in return. (18-19)
제리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핼(Hal)과 셰리(Shari)에게 일종의 영웅적 존재가 된 후 집을 나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낯선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쉽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줄 알면서 정작 사랑하는 이들과 가족에게는 지극히 무심하고 소홀한 자기 자신, 그러면서도 그들로부터는 오로지 구원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용을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하여.
[B]ut here I am taking up space in my usual way, as if waiting for the news to come on, some defining word filtering down from the heavens to let me know what ought to be done next. This is what Rita found most chronically difficult about me, and what Theresa has begun openly referring to as my “preternatural lazy-heartedness.” (41)
제리의 직장 동료이자 애인이었던 캘리(Kelly)가 심각한 자괴감과 외로움을 토로한 뒤 사라졌을 때에도 그는 발을 동동 구를지언정 실제로 어떠한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그는 그녀가 혹 자해를 하거나 할까 봐 걱정된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직접 찾아다니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가 편안함을 느끼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새로운 소식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뿐이다. 이 점 때문에 리타도 그를 어렵게 생각했으며, 테레사도 제리의 이런 점을 두고 공개적으로 “초자연적으로 게으른 성향”(41)이라 비판하기까지 한다.
한용재. 「『맥베스』에 나타난 불안에 대해서」. 『Shakespeare Review』 49.3 (2012): 524-25. Print.
Chang-rae, Lee. Aloft. London: Bloomsbury, 2005.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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